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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사에서 지지자로

유년의 기억 속 전도사

내 이름은 불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고, 우리 집도 불교를 믿는 가정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기독교 계통의 유치원을 다녔다. 이젠 너무나도 오래된 일이라 대부분의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히 기억나는 한 사람이 있다. 유치원 밴의 문을 열어주고 안전한 등하원을 책임지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할 때마다 기분을 물어봐 주고, 아이들의 행동을 살피며 친구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조언을 해주는 사람. 우리는 그를 '전도사님'이라고 불렀고, 내 기억 속 전도사란 그런 사람이었다.

테크 에반젤리스트: 기술 전도사

한참의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고 나서 나도 전도사의 일을 하게 됐다. 다만 한국어 표현 대신 '에반젤리스트'라는 영어 이름으로 불리는 역할인데, 특정 기술을 매개로 개발자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기술 생태계를 만들어나가는 역할이기에 테크 에반젤리스트라고 한다.

테크 에반젤리스트가 하는 역할은 어릴 적 전도사가 했던 일과 많은 부분 유사하다. 개발자들에게 기술 제품으로의 첫 여정을 안내하고, 그들이 제품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지 살피며, 제품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전파하는 역할이다.

내가 이쪽으로 커리어 방향을 모색하게 된 것은 블로그에 앞서 소개한 나의 관심사 및 성향과 깊은 관련이 있다. 나는 개발자로 일하는 내내 테크 업계에서 소통과 친절함이 부족한 영역을 항상 주시해왔다. 나에게 지금 일하면서 마음을 들끓게 하는 지점이 있다면 그것은 '개발자 경험'이라 하겠다.

사용자 경험으로 대변되는 일반 사용자 향 제품도 그렇지만, 개발자들이 사용하는 기술 제품 또한 절대로 '만든다고 누군가 저절로 쓰지' 않는다. 그 과정에는 사내외 개발자들과 끊임없는 소통과 챙김이 있어야 하고, 개발자들에게 필요한 적절한 문서와 교육이 제공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아마도 그러한 일에 전념하는 인력의 배치로 나타날 것이다. 테크 에반젤리스트는 그런 역할을 수행한다.

네이버제트에서의 경험

처음 테크 에반젤리스트 일을 경험했던 곳은 최근까지 다닌 메타버스 서비스 '제페토'를 운영하는 네이버제트였다. 제페토 월드 SDK라는 개발자 도구를 사용하는 생태계를 조성하고, 개발자들에게 기술 콘텐츠를 제공하며, 교육과 기술 지원까지 폭넓게 담당하는 포지션이었다. 아직 B2B SaaS 및 API/SDK 등 기술 제품 비즈니스가 온전히 뿌리내리지 않은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기회였다. 특히 제페토가 이미 어느 정도 글로벌 사용자를 확보한 상태였기에 제페토 월드를 개발하는 세계 여러 나라의 개발자 및 협력사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한번은 화상으로 이스라엘에 있는 회사의 기술 지원을 한 적이 있다. 협력사가 출시 일정이 촉박한 상태에서 꼭 필요로 하는 기능이 있어서, SDK 개발팀에 전달해줄 수 있느냐는 부탁이었다. 그들의 요구사항을 듣고 SDK 개발팀에 이슈를 등록했으며, 신규 기능은 비교적 높은 우선순위로 개발됐다. 나는 그 사용법을 정리해 협력사와의 팔로업 세션에서 직접 설명했다.

내게는 이 일련의 과정이 정말 재미있고 보람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개발자들을 위한 문서를 작성하고 샘플 코드를 만드는 일 또한 개발자로서 코드를 만드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와 일로서의 가능성을 가지는 분야라는 것을 알게 됐다. 회사의 운영 방향에 따라 에반젤리스트 일을 생각했던 만큼 길게 하지는 못했는데,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기술 제품을 사용하는 개발자와 파트너의 성공을 돕는 일을 좀 더 깊고 전문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갈증은 커졌다.

새로운 도전: 몽고DB 디벨로퍼 어드보킷

그러던 중 약 3개월 전, 몽고DB 리쿠르터에게 링크드인으로 연락을 받았다. 몽고DB에서 시니어 디벨로퍼 어드보킷으로 일하는 것에 대한 의사를 묻는 내용이었다. 가볍게 이야기를 들어보았고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지원했다. 그렇게 약 한 달 반 동안 총 열 번의 인터뷰를 거쳤고, 제안을 수락해 내일 첫 출근을 앞두고 있다.

디벨로퍼 어드보킷은 테크 에반젤리스트와 큰 틀에서 유사한 역할이지만, 뉘앙스의 차이가 있다. 특히 에반젤리스트(전도사)라는 말이 주는 종교적인 뉘앙스에서 벗어나, 어드보킷(지지자)으로서 개발자의 편에서 제품을 제공하는 회사와의 가교 구실을 함을 의미한다.

나는 시니어 디벨로퍼 어드보킷으로서, 면접에서 이미 수차례 만났던 능력 있는 팀원들과 함께, 한국을 포함한 APAC 지역에서 몽고DB의 개발자 활성화(Enablement) 및 관계 형성을 위한 일을 수행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주로 개발자를 대상으로 한 기술 교육 콘텐츠 작성, 워크숍, 핸즈온 세션이 포함된다. 필드 마케팅팀과 함께 고객사 및 개발자와의 관계 형성을 위한 효율적인 전략을 세우는 일도 직무 요구사항의 일부이다.

새로운 기회에 대해 여러모로 설렘과 기대를 안고 있다. 새롭게 학습할 지식과 나의 경험을 잘 활용해 팀에 빠르게 기여하고 싶다. 조만간 그 과정에서 배우고 느낀 바를 블로그를 통해 또 소개할 수 있기를.